다제약물 관리가 중요한 이유...불필요한 약 뺐더니 22→15개로
- 최은택 기자
- 승인 2022.03.23 06:14
다제약물 관리사업 '병원모형'에 참여하고 있는 A병원은 좌심실부전 소견으로 응급실을 통해 입원한 77세 여상환자의 처방내역을 살펴보고 깜짝 놀랐다. A병원 4개 진료과와 다른 의료기관 3곳에서 처방받아 복용하고 있는 약물이 무려 22종이나 됐기 때문이다. 당뇨병에 만성신장병, 류마티스 관절염까지 복합상병을 갖고 있다고는 해도 복용 약 갯수가 너무 많아 보였다.
이에 A병원은 다제약물 관리 일환으로 처방약물을 검토했는데, 환자는 유사효능을 가진 소염진통제와 소화성궤양용제를 중복 복용하고 있었다. 이는 비슷한 질환으로 여러 의료기관을 이용한 영향도 있는 것으로 보였다. 더구나 노인에게 투여하면 낙상과 골절위험이 높아 노인주의의약품으로 지정된 약물도 3종 이상이나 포함돼 있었다.
A병원은 진료과에 의뢰해 불필요한 약을 줄이도록 했고, 비슷한 질환으로 여러 의료기관을 이용하지 않도록 환자에게 안내했다. A병원 4개 진료과도 예약일자를 맞추도록 했다. 이렇게 A병원이 개입한 결과 복용 약물 수는 15종으로 줄었고, 노인주의약물도 감소해 부작용 위험도를 낮출 수 있게 됐다.
역시 다제약물관리 사업에 참여하는 B병원은 82세 외래환자의 처방약을 12종에서 9종으로 조정하고, 상호작용이 적은 약물로 처방약을 변경하도록 했다.
이는 '2021년 다제약물 관리사업 병원모형 사례 발표회'에서 우수사례로 발표된 환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건강보험공단은 복용하는 약 성분이 10개 이상인 만성질환을 가진 건강보험가입자를 대상으로 다제약물 관리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사업모형은 '약사모형', '의원모형', '병원모형' 등 3가지가 있는데, 2018년 '약사모형'을 시작으로 2019년 '의원모형', 2020년 '병원모형'으로 확대됐다.

'약사모형'의 경우 전국 106개 시군구에서 자문약사로 위촉된 537명이 참여하고 있다. 약사가 가정을 방문하거나 환자가 약국에 나와 복약상태를 점검하는 것을 시작으로 모니터링, 복약지도, 복약상담 등의 상담서비스가 총 4차에 걸쳐 이뤄진다.
'병원모형'에는 상급종합병원 16곳, 종합병원 17곳, 병원 2곳 등 총 35곳이 참여 중이다. 입원관리를 시작으로 퇴원점검, 유선상담, 외래상담 등 4번의 상담서비스를 통해 약물을 조정하고 복약순응도 등을 점검한다. 필요한 경우 지역과 연계해 가정방문, 유선상담 등 2번의 상담서비스를 더 추가할 수도 있다.
'의원모형'은 아직 비활성 상태인데 한국의료복지사회적협동종합연합회 소속 의료기관 30곳이 참여하고 있다. 총 4번의 상담서비스를 통해 복용 약물 점검 및 평가, 처방조정, 복약순응도 평가 등을 수행한다.
참여자들의 만족도는 높았다. 건보공단은 지난해 다제약물 관리사업 참여자를 대상으로 서비스 만족도 조사를 실시했는데, 서비스 만족도는 89.3점으로 높게 나타났다.
건보공단은 이런 성과에 힘입어 시범사업격인 다제약물관리 사업을 본사업으로 전환하기로 하고, 준비작업 일환으로 연구용역을 추진하고 있다.
이은영 만성질환관리실장은 22일 전문기자협의회 간담회에서 "최근 연구용역 입찰 공고가 나갔고, 5월 착수보고회를 시작으로 12월까지 연구가 진행될 예정이다. 지난 4년 간 시범사업에 참여한 대상자들의 약물이용 변화, 의료비 변화, 서비스의 비용효과성 등을 체계적으로 평가해 사업 필요성에 대한 근거를 만들고자 한다. 사업을 제도화하기 위해 적절한 사업방식, 서비스 절차, 대상자 기준 등 구체적인 방안도 모색할 계획인데, 이 사업을 건보공단 고유사업으로 진행할 지, 수가체계로 편입시킬 지는 연구결과를 토대로 충분한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이 실장은 또 "다제약물 관리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약물 평가와 조정이 이어지는 다학제 협업이 중요하다. 앞으로 환자의 전반적인 건강관리를 목적으로 하는 장애인 주치의, 의료사협(한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등 방문진료 참여의원을 중심으로 현장에서 적용 가능한 의‧약사 협업방안을 모색하려고 한다"고 했다.
이어 "병원모형 서비스의 경우 대상자 기준, 서비스 절차 보완 등으로 제도화 추진에 대비해 사업을 내실화하고 서비스 효과성을 높일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비활성 상태인 '의원모형'은 극복해야 할 과제다. 건보공단도 일부 한계를 인지하고 있었다.
이 실장은 "백신 접종, 코로나 19 대응 등으로 의원의 참여도가 낮았고, 환자가 여러 군데 의료기관에서 처방받는 경우 다른 의원 처방을 검토하고 조정하는 게 쉽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환자의 전반적인 건강을 관리하는 주치의(단골의사)가 없는 경우 다제약물 관리의 실효성이 낮을 수 있다"고 했다.
이 실장은 반면 "병원에서는 의사, 약사 등 다학제 협업이 가능한 조건이어서 복용하는 모든 약을 검토하고 조정하는 것이 용이하기 때문에 병원을 중심으로 의료기관 참여를 확대하는 게 실효성 있는 방안이라고 생각된다. 병원모형 서비스는 2020년도 7개 병원에서 2021년도 35개 병원으로 참여가 확대됐고, 병원약사회와 업무협약을 추진해 긴밀하게 협조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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