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세상

(기고)소수라서 외면받는 급성골수성백혈병

뉴스더보이스 2023. 2. 13. 07:52
  •  뉴스더보이스/  승인 2023.02.13 06:51

홍준식 서울대학교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

급성백혈병 중 가장 흔한 형태인 급성골수성백혈병(Acute Myeloid Leukemia, AML)은 치료하지 않으면 1년 내 대부분이 사망하는 치명적인 질환이다. 고강도 항암화학요법(항암치료) 만으로도 좋은 결과를 얻는 약 25%의 환자들을 제외하면, 동종조혈모세포이식을 통한 굳히기 치료가 완치를 위한 최선이며 이식 기술의 발전으로 치료 성적이 향상되어 왔다.

그러나 환자의 다수를 차지하는 고령자는 고강도, 집중 항암치료와 동종조혈모세포이식을 견디지 못하므로 저강도 치료만이 가능하고 이로 인해 전체적인 치료 성적은 여전히 좋지 않다.

골수 안의 조혈모세포는 여러 단계를 거쳐 우리 몸을 순환하는 백혈구, 적혈구, 혈소판의 혈액 세포로 성장하고 분화하는데, 골수형성이상증후군 (Myelodysplatic syndrome; MDS)은 이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혈액세포의 수가 줄어들고 그나마 생산된 혈액세포도 비정상적인 모양과 기능을 갖게 되는(형성이상) 악성 혈액질환이다. 고위험 골수형성이상증후군은 짧은 시간 내 급성골수성백혈병으로 진행할 위험이 크며, 노쇠하지 않은 환자에게만 가능한 동종조혈모세포이식이 유일한 완치 방법이다.

다른 암종들과 마찬가지로 골수계 종양에서도 지난 몇 년간 효과적인 신약들이 등장하고 있다. 2017년에는 FLT3와 IDH2 변이를 표적으로 하는 약제들과 항세포사멸단백 BCL-2를 억제하는 치료제 등 복수의 신약들이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았다. 근 40년간 안트라사이클린 계열제와 시타라빈을 이용한 고강도 항암치료만 유지하던 급성골수성백혈병 치료사에 기념비적인 해라고 할 수 있었다. 골수형성이상증후군에서도 저위험군에서 빈혈을 개선하는 효과를 보이는 경구제들이 효과를 증명하고 있고, 고위험군에서의 치료제 연구도 어느 때보다 활발하다.

문제는 우리나라에서는 좁은 급여 기준에 막혀 신약 사용을 통한 실질적인 치료 성적 향상이 실현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현재 FLT3 변이 양성인 국내 급성골수성백혈병 환자들은 미도스타우린을 관해유도치료나 공고화치료로 사용 시 각각 천만 원이 넘는 비용을 내고 병용하거나 사용을 포기해야 한다. 미도스타우린은 임상시험에서 고강도 항암치료와 함께 복용할 경우 중앙 생존기간이 74.7개월로, 항암치료만 받은 환자들의 25.6개월보다 우월한 결과를 보인 바 있다.

효과적인 신약을 통한 구제와 조혈모세포이식 진행이 더욱 절실한 FLT3 변이 양성 재발/불응성 환자의 경우 문제는 더 심각하다. FLT3 표적치료제 길테리티닙은 기존의 항암치료와 비교했을 때 중앙생존기간이 9.3개월 대비 5.6개월로 사망위험을 36% 감소시켰고 이는 완치를 도모하기 위한 동종조혈모세포이식을 향한 길을 넓혔다는 면에서 중요한 약제이다.

그러나 지난해 3월 적용된 급여에서는 동종조혈모세포이식이 가능한 환자에서만 관해유도요법으로 최대 4주기까지만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로 인하여 동종조혈모세포이식이 가능한 환자는 제한된 사용 기간으로 미세잔존질환(Minimal Residual Disease, MRD) 최소화를 위한 충분한 선행 치료를 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고, 이식이 불가능한 환자는 길테리티닙은 물론 불량한 신체 상태로 고강도 항암치료도 불가하여 사실상 유용한 치료법이 아예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들 FLT3 억제제들의 임상시험 결과들은 환자 수가 많은 고형암종에서 완화요법으로 급여 인정을 받은 약제들과 비교하여도 임상적 혜택이 결코 적지 않으며, 관해를 얻을 경우 조혈모세포이식을 통한 완치의 기회가 상존하는 혈액암의 경우 더 긴요하다고 할 수 있다.

국내 급성골수성백혈병 신규 환자는 1년에 약 1,500명으로 이 중 약 25~30% 정도가 FLT3 변이 양성이므로 FLT3 변이를 가진 급성골수성백혈병 신규 환자는 1년에 400명 내외이고, 이 가운데 재발/불응성 환자는 150명가량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유병인구가 2만 명 이하인 질환을 희귀질환(Rare disease)으로 정의하고 있다.

동종조혈모세포이식으로 완치된 FLT3 변이 동반 급성골수성백혈병 환자의 경우 당연히 더 이상 FLT3 변이가 없으므로 환자 수가 누적되지 않기에 실제 FLT3 변이 동반 급성골수성백혈병 환자의 유병인구는 희귀질환군의 환자 수에 준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2023년 2월부터 베네토클락스와 데시타빈 혹은 아자시티딘의 병용요법이 집중 유도화학요법에 적합하지 않은 새로 진단된 급성골수성백혈병에서 1차 치료로 급여가 확대되는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 그러나 FLT3 억제제를 포함하여 젊은 급성골수성백혈병 환자에서 완치율을 높일 수 있는 아직 도입되지 않았거나 급여 인정되지 않은 신약들과, 골수형성이상증후군 환자들의 치료 성적을 개선할 수 있는 유용한 신약들도 진료 현장에서 사용이 지연되지 않도록 해야한다.

세포유전자 결손을 동반한 골수형성이상증후군에서 수혈의존 빈혈 개선을 위한 레날리도마이드는 2005년 9월 미국 FDA의 승인을 받았으나 한국에서 급여가 인정된 것은 2019년이었다. 해당 환자들은 그동안 많은 불편을 겪고 수혈의 장기 부작용으로 좋지 않은 합병증을 감수해야 했다. 환자 수가 많지 않은 질환일수록 효능과 경제성에 대한 평가 등 여러 측면에서 의료진, 제약사, 그리고 보건당국의 부지런하고 적극적인 검토와 협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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