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세상

“피 토하는 아이에게 한 다짐, 이제 사회가 나서주길”

뉴스더보이스 2025. 3. 10. 06:33
  •  문윤희 기자/  승인 2025.03.10 05:53

“국내 단 2명 있는 선천성단장증후군, 후천성은 산정특례 배제”
“먹어도 굶는 병, 보호자가 수액 넣어야 하지만 불법의료행위”
“보호자 간병부담 높지만 지원은 전무, 2차 문제로”
“치료 위해 집 떠나 대형병원 인근 원룸서 지내는 엄마와 아기들”

국내에서 희귀병을 앓는 이들의 삶은 녹록치 않다. 국가가 지원하는 대상에 포함되지 않으면 질환의 무게는 온전히 환자와 그 가족의 몫이 된다. 희귀질환을 앓는 아이를 가진 부모라면 생계 유지의 문제까지 겹친다.

그나마 희귀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대형병원이 가까이 있다면 심리적 불안이라도 덜 수 있지만 그 마저도 포함되지 않으면 절박함은 극에 달하게 된다.

희귀질환을 앓기에 국가와 사회로부터 더 특별한 보호와 지원을 받아야 하는 존재지만 이들이 삶은 정반대의 위치에 서 있다.

매일 사용하는 의료소모품(사진 좌측)과 중심정맥 관리드레싱을 받고 난 후의 아이 모습

뉴스더보이스는 희귀질환 환자와 그 가족들이 처한 현실을 생생하게 전하기 위해 지난달 27일 세계희귀질환의 날을 기념해 열린 토론회에서 '단장증후군' 환아의 어머니 이다래씨의 발표 내용을 그대로 게재한다.

환자가 환자로써 정당한 치료를 받고, 사회적으로 보호를 받으며, 사회 일원으로 당당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환경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다래씨의 글을 그대로 소개한다.

안녕하세요.
히르쉬스푸룽병(Hirschsprung)으로 출생 직후 1차로 장루수술을 하고, 13개월 무렵 대장 전체와 소장 일부를 절제하는 수술로 인해 단장증후군이 된 11살 아들의 엄마 이다래입니다.
저희 아이는 장 절제수술 이후 만성적인 설사, 혈변, 마비성 장폐색증으로 인해 극심한 영양실조의 문제를 겪어 왔습니다. 서울아산병원에서 치료를 계속해 오다, 5세에 염증성 장질환인 크론병을 추가로 진단 받아 산정특례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현재 홈티피엔(TPN)이라 부르는 가정 내 정맥영양을 통해 집에서 하루에 18시간에서 20시간 가량 주사를 맞고, 4-6시간의 주사를 맞지 않는 프리타임 동안 학교를 가거나 일상생활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먹어도 굶는 병, 단장증후군(장부전)은 선천성이나 후천성으로 장의 물리적 또는 기능적 소실이 발생해 우리가 일상으로 먹는 음식으로는 영양 공급이 어려운 질병입니다. 중심정맥을 통한 TPN이라 부르는 정맥영양과 특수식이유지로 목숨을 연명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여기서 선천성이라 함은 태아가 유전적인 문제로 외과적인 수술없이 뱃속에서부터 짧은 소장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을 의미하고, 후천성은 다른 질병이나 외상으로 인해 외과적 수술로 잘라내고 남은 소장의 길이가 짧아 흡수장애를 일으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수술 후 남아있는 장의 길이, 절제부위, 회맹판 및 대장의 포함 여부에 따라 환자의 예후는 다릅니다.
단장증후군을 완치하는 근본적인 치료방법은 아직 없습니다.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영양 공급을 원활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기에 TPN치료가 필수적이지만 현실적으로 병원에 1~2년 또는 그 이상을 장기 입원해서 TPN치료를 지속할 수 없으므로 가정 간호를 통한 홈TPN 투약과 특수식이 유지가 꼭 필요합니다.
장 절제수술 이후에는 적응하기까지 오랜 시간 설사를 하게 되는데, 소아의 경우 1~2년이 넘는 기간 동안 많게는 하루에 2~30회씩 기저귀를 갈아야 합니다. 저의 아이는 장 수술 후 10년이 지난 지금도 하루에 10회 이상 무른 변을 보고, 아직도 자면서 4~5번 대변을 보기에 전 매일 밤 기저귀를 갈고 옷을 갈아 입히기 위해 3시간 이상 잠이 든 적이 없고, 10년 동안 엉덩이발진이 좋아진 적이 없습니다.
TPN이라 부르는 제제는 고함량의 영양수액이라 사람들이 보통 병원에서 말초혈관에 주사라인을 잡아 수액을 맞는 것과 다르게, 심장으로 바로 연결되는 중심정맥에 히크만이라던지 브로비악 등 의카테터를 삽입하는 수술을 하고 이관을 통해 수액을 맞거나 증상에 따라 철분이나 비타민 셀레나제 등의 영양제제를 맞아야 합니다. 중심정맥관을 삽입하면 필연적으로 이중심 정맥관라인 감염을 통한 패혈증의 위험을 동반하고 있습니다.
 
라인감염이 의심되면 바로 혈액검사와 균배양검사를 통해 패혈증인지 확인을 해야하고, 검사결과가 나오기까지 2일에서 5일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발열이 발생한 48시간 이내에 선제적 항생제 투약이 꼭 필요합니다. 패혈증의 경우 즉시 치료하지 않으면 급성으로 사망에 이르게 되기에 중심정맥관 소독과 드레싱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목욕이나 샤워를 하는 것도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여름은 방수필름을 붙인 드레싱 부위 땀이나서 가려움증에 무의식적으로 긁기에 특히 조심해야 합니다. 집에서 일상생활을 하면서도 수액줄이 꼬이거나 끊어지지 않게 잘 살피고 관리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이렇게 보호자의 간병부담이 높은 질병이지만 보호자의 간병 부담이 높을수록 보호자 자신의 건강을 챙길 수 없다는 문제도 2차적으로 발생합니다.
그리고 처음 홈TPN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수액폴대, 120만원가량의 인퓨젼펌프를 2대 이상 개인이 직접 구매해야 하기에 초기에 준비비용이 높습니다. 약은 병원에서 처방이 가능하지 만, 홈TPN에 필수적으로 필요한 수액라인, 필터, 주사기, 중심정맥관 드레싱 물품 등의 의료소모품 역시 병원과 동일하게 구비하고 있어야 하는데, 매일 교체해야 하는 이런 물품 역시 어떠한 지원없이 거의 다 외부 의료기상사에서 개인이 사야하기에 경제적인 부담이 너무 크다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희귀질환복지법 제정의 필요성
단장증후군은 현재 선천성의 경우에만 산정특례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선천성단장증후군은 현재 국내에 2~3명 정도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단장증후군환자는 후천성이고 사실 발생 원인만 다를 뿐, 이 질환의 모든 증상, 경과, 치료, 합병증은 동일합니다. 동일한 질환임에도 극소수만 산정특례대상에 포함되어 있고, 대부분의 환자들은 이에 불포함 되어있다는 점이 불합리한 기준이라 사료됩니다.
홈TPN은 국내 빅5의 3차 병원에서만 시범사업으로 가정간호사 파견과 부모 교육 등의 형태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시범사업의 기준 안에 들어와야지만 사실 홈TPN을 할 수 있는데, 여러 현실적인 제약들 때문에 사실 서울과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에서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그래서 서울아산병원에서 홈TPN을 하고 있는 소아장부전환자들 중 여러명은 지방에 있는 집을 떠나서 엄마가 병원 옆 동네에 원룸을 잡아서 아기와 둘이 함께 살면서 치료를 시작한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체계화된 제도 자체가 없기에 병원마다 별도로 시스템도 다르고 환자들이 사용하는 약과 용품의 지원이나 처방도 다 다르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가정에 수액을 맞고 보호자가 이를 연결하는 자체가 모두 의료행위이기에 불법이라는 점입니다. 우리가 가정 내에서 드레싱을 하고 수액을 연결하고 배액을 하는 것이 어떠한 경제적인 이득추구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닌데, 내 가족의 생명과 의료기관 로직의 리스크를 감당하기 위해 하는 일인데 불법 취급받는 것이 불합리 합니다.
단장증후군, 가성장폐색, MMISH 모두 같은 증상과 치료합병증을 가진 만성장부전 환자들입니다. 영구장루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아니면 만성 장부전 환자들은 장애등록기준 자체가 없어서 장애인복지법상 보장되어 있는 국가의 기존 복지 서비스를 하나도 이용할 수 없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한 예로 콩팥에 문제가 있어서 만성 신부전증 진단을 받은 환자의 경우, 식사나 약물치료만으로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힘들어 혈액투석을 3개월 이상 지속하거나 콩팥이식을 한 사람의 어려움을 지원하기 위해 신장 장애인으로 등록할 수 있습니다.이를 단순히 콩팥에서 장으로 대체해도 너무나 논리적으로 명확하게 이야기가 이루어집니다. 식사나 약물치료만으로 생명을 유지하기 어려워 TPN치료를 지속하는 만성장부전 환자들도 장애등록 기준을 마련해서 일상 생활에서의 제도적 보호와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저는 단장증후군의 대표로 이 자리에서 있지만 사실 우리 아이는 단장증후군만 가진 아이가아닙니다. 뇌, 심장, 콩팥, 척추측만, 근육, 인지 등 전신에 영향을 미치는 ‘바라이서윈터증후군’이란 극희귀유전질환을 2019년도에 최종 진단 받았습니다.
현재 전세계에서 200명 이내, 국내에는 10명가량 진단된 것으로 추정되는 병입니다. 처음 진단받을 당시 국내 사례도 자료도 전무한 상태라 담당 의사선생님은 영문명으로 된 질병명 딱 한 줄만 알려주셨습니다. 집에 돌아와 구글 검색을 통해 해외사례를 찾아보면서 저는 눈앞이 캄캄해 졌습니다. 앞으로의 미래는 상상하지 못하겠더라구요. 희귀질환 한 가지만 있어도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데, 이렇게 특별한 아이라니...
나는 한번도 특별한 아이를 원한적은 없는데, 아이를 바라보며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던 아기 때, 여러 번 수술하고 힘들던 그때 니가 세상을 떠났다면 우리가 이렇게 오랫동안 힘들고 고통받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머릿 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차마 입 밖에 꺼내지 못한 그 생각에 사로 잡혀 지내던 어느 날 아이의 상복부위장관에 출혈이 생겨서 쿨럭 쿨럭 검은 피를 토 하는 상황이 생겼습니다. 멈추지 않고 토혈하는 아이를 끌어 안고 야간응급실로 달려가는 택시 안에서 저는 아이에게 빌고 빌었습니다.
“엄마가 잘 못 했어. 그런 생각조차 하면 안되는데, 제발 이 고비 한번만 또 넘겨줘. 한번만 더 버텨줘. 한번만 더 살아줘.”
그 일이 지나가고 저는 아이를 위해서라면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다 하겠다고 결심했고, 이 자리에 나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나간 10년의 시간은 사실 돌아보고 싶지 않고, 앞으로의 일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지 오늘 하루 집에서 아이와 함께 웃고, 가족들과 함께 우리에게 주어진 일상을 누릴 수 있는 것에 감사할 뿐입니다. 앞으로의 일들을 걱정하고 대비하는 것은 여기에 앉아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해 주신 여러분들이 고민해주세요.
오늘 자리를 빌어 마지막으로 한 말씀을 더 드리자면, 단장증후군을 포함한 만성장부전증은 10년 전만해도 기대 수명자체를 추정할 수 없는 질병이었습니다. 현재 의료의 발달로 집과 사회에서 일상생활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신생아 때 단장증후군을 진단 받은 환아 중 2명이 올해 17살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습니다. 이 아이들이 지금과 같은 어려움과 절망이 아니라 조금 더 나은 희망을 갖고 성인이 될 수 있도록 오늘 나눈 이야기들을 한 번 더 검토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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